[매헌서포터즈3기_박민욱]상하이의거, 그리고 윤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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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거, 그리고 윤봉길>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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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윤봉길 의사를 알리는 매헌 서포터즈 박민욱입니다.
꽃샘추위도 어느덧 사그러지는 4월입니다. 지난 2월 22일에 개봉한 영화 <파묘>가 개봉 18일 만에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신화를 기록했다고 해요.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N차 관람이 가능한 영화들은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뭔가 발견해낼 수 있는 코드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작품에는 그런 영화 속에 숨겨진 코드들, 몰래 숨겨 놓은 메시지 같은 것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다고 덧붙이면서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나중에 알고 보니까 독립운동가 이름에서 따왔다”
이런 것처럼 말이죠.

1000만 영화를 앞두고 있는 파묘. 영화 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눈여겨볼만 합니다.
주요 인물로는 ‘김상덕’, ‘이화림’, ‘고영근’, ‘윤봉길’이 등장합니다.
저는 이 배역의 이름들이 모두 독립운동가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는데요.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띄지 않나요? 제게는 상하이 의거로 알려진 윤봉길 의사의 이름이 보이네요.

윤봉길 의사에 대해 아시나요?
일제강점기 훙커우공원(홍구공원) 투탄의거, 다른 말로 상하이 의거와 관련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32년 상하이 사변을 통한 중국 진출을 기념하는 행사. 동시에 쇼와 일왕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 참석하는 인원은 도시락과 물통을 제외한 소지품은 허락되지 않아 도시락과 수통 폭탄으로 고위 일본 간부들에게 타격을 입힌 것으로 알려졌죠.

그런데 여러분.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은 도시락이 아닌 수통 폭탄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나요? 윤봉길 의사가 거사에 사용한 폭탄은 '수통형 폭탄'입니다. 도시락형 폭탄 또한 준비해 뒀지만, 미처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도시락 폭탄을 던졌다는 것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 듯 합니다. ‘윤봉길 도시락’이라는 키워드만 입력해도 이러한 글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죠. 너무도 널리 알려진 탓에,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쉽지 않아요.

그럼,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윤봉길 의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 어떨까요. 1932년 4월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가 일어난 현장으로 자세히 들어가 볼까요?
1932년 4월 29일.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가 일어난 현장으로 자세히 들어가 볼까요?
1932.01.08
한인애국단 이봉창이 일왕의 육군 관병식 참관 후 환궁하는 찰나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일왕은 앞선 마차에 타고 있었고, 폭탄의 화력 자체가 약해 의거는 실패한다. 의거는 실패했지만, 이봉창의 의거는 중국내외의 동포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들 중에는, 상하이에서 채소장사를 하며 독립에 대한 열망을 품던 윤봉길 의사도 있었다.
1932.04.26
이봉창 의사의 의거에 감명받아 윤봉길 의사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27일과 28일. 의거 장소를 검토하며 준비 사항을 확인했다. 답사 중에는 감시를 피해 이화림 선생과 부부인 척 위장했다. (이화림은 후에 영화 파묘의 주역 이름으로 등장한다) 또한 일본 간부들의 사진을 구해 생김새를 파악했다.
1932.04.29
거사일이 밝았다.
윤봉길 의사는 김구 선생과 아침을 함께 하며, 폭탄을 건네받는다.
거사 당일 마지막 아침. 식사를 마치니 시간은 7시가 됐다.

백범 김구는 매헌의 제의로 회중시계를 맞바꾼다. 윤봉길 의사는 소지했던 돈까지 김구에게 건넸다. 한 시간 남짓 남은 인생보다 나라의 미래, 광복이 중하다. “왜놈 이외에는 어떠한 외국인에 대해서도 가해하지 말라”는 김구의 당부를 마지막으로 윤봉길은 길을 나섰다.
- 7:50
윤 의사가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의 경계는 삼엄했다. 출입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었다. 다행인 점은 아직 이른 시간이라 경비를 선 사람은 중국인이었다. 사전조사대로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코트, 일본 보자기, 일본 물통. "나는 일본인인데 왜 입장권을 보여달라 하느냐" 꾸짖으며 정문으로 들어갔다. 한 차례 위기를 넘겼다.
- 09:00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 상해 파견 군인을 비롯해 각국의 외교사절, 초청자, 주민을 포함해 3만명에 달했다. 행사 개최 30분 전부터 고위 간부들이 식단에 오르고, 군사 퍼레이드가 진행됐다.

- 11:50
어느덧 식은 제1부와 제2부가 끝나고 제3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들린다. 이제 2절의 마지막 소절이다. 곧 묵념이 이루어질 터다.
순간 한 청년이 뛰쳐나왔다.
식단에서 19m 떨어진 곳에 있던 윤 의사는 3.63m를 뛰어나가 폭탄을 단상 위로 던졌다. 폭탄은 가와바타와 시게미쓰 사이에 떨어졌고, 펑-하는 폭발이 일었다.
일본군 최고 사령관 대장 시라카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 사망
일본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 일본공사 시게마쓰 등 중상

상하이 의거의 영향은 비단 국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중국 국민당 장제스(장개석) 총통은 ‘중국 100만 대군도 못한 것을 한 명의 조선청년이 했다’며 격찬했고, 해방 후 윤 의사의 후손을 국빈으로 초대해 ‘장한 의기는 천 년을 빛나리라’라는 글을 쓰며 감사를 전했습니다. 이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국에 40년간의 신탁통치를 제안했으나, 한국의 독립운동에 감명받은 장개석은 이에 반대하며 독립을 주장했죠. 뿐만 아니라 중국 군관학교에 한국인장교훈련반을 개설해 한국광복군 설립에 도움을 주었어요.
매헌 윤봉길의 매는 매화를 뜻합니다. 스승 성주록이 ‘한 겨울 추위 속에서 향기를 내뿜는 매화의 고고한 기품과 충의정신을 간직하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것이죠. 3월은 매화가 피고 지고, 8월에는 무궁화가 핍니다. 4월에는 국민의 나무 사랑 정신을 북돋기 위해 제정된 식목일이라는 기념일이 있습니다.
올해에는 3월에 윤봉길 의사를, 4월에 상하이 의거를. 그리고 8월에 광복을 기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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