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매헌서포터즈_김지호]겨레사랑 14호에 대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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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사랑 14호에 대한 서평
우리가 알고 있는 윤봉길 의사는 어떤 사람인가.
1932년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 파견 대장을 즉사시키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총살된 독립투사라고 역사책에서 배웠다.
양재동에 <윤봉길 기념관>이 있다.
그곳에 가면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자료와 영상이 있는데, 비정기 간행물인 <겨레 사랑>이라는 책자가 눈에 띈다. 이 책은 우리가 역사책을 통해 알고 있는 매헌 윤봉길의 또다른 모습들을 말해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14호의 내용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25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고 간 한 젊은이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 산다. 우리 청년시대는 부모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일층 더 강인한 사랑이 있다는 걸 각오했다. 강산과 부모를 버리고라도 이 길을 떠나간다는 결심이다."
나라를 위해 어린 청년이 했던 단호하고도 결단력있는 이 결심은 훗날 독립투사가 되는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앞서 윤봉길 의사는 어떤 농민이 아버지 묘소를 찾고자 아무 표식없이 묘표들을 뽑아와선 윤 의사에게 아버지 묘지를 찾아 달라고 말하는 사건을 경험한다. 그 농민의 행동때문에 선친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묘소까지 엉망이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무지가 일제의 억압보다 더 무섭다는 걸 깨닫고 야학당을 열어 농민들의 문맹퇴치에 힘썼다고 이 책은 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농민독본>이다.
이 글을 통해, 물통 폭탄을 던진 사람(많은 사람들이 도시락 폭탄으로 알고있으나, 윤 의사가 실제 던진 폭탄은 물통 폭탄이었다)이라는 단편적인 해석 이전에 윤봉길이란 사람이 어떤 성정을 지닌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글은 단순히 윤봉길 의사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 전달을 넘어,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나라가 존립해야 국민이 있고 젊은이가 존재함을 마음에 새기게 한다.

우선 글씨 크기가 작지 않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읽기에 불편하지 않고, 겉지도 단단한 재질이다.
내용 중에는 <윤봉길 의사의 농촌계몽운동> 이라는 글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윤 의사는 7살때부터 백부인 윤경의 서당에서 천자문을 공부했고 그의 나이 12살때 3.1 독립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여파로 그가 살던 덕산읍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에 측량보조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최은구가 세운 서당에서 공부하던 윤의사는, 그에게서 일본의 토지조사 사업 관련된 내용들을 듣고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이 우리의 땅을 빼앗기 위함이란 것을 깨닫는다.
그는 17세에 성주록에게서 경서를 배우는데, 19세가 되던 해 성주록은 윤 의사에게 성삼문의 호인 매죽헌에서 따서 <매헌> 이란 호를 지어주었다. 그래서인지 한겨울 추위를 이겨낸 매화의 기품을 윤 의사에게서 느낄 수 있다.
윤 의사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혼자 아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웃에게 전하려고 했다는 점이 놀랍다. 일제의 치하가 아니었던가!
그 어린 소년이 두려움도 없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문맹을 퇴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보통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양재 시민의 숲'이 '매헌 시민의 숲'으로 명칭이 개정됐다는 내용이 지나치게 큰 글자크기로 넓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공간에 ‘매헌 시민의숲’ 이름이 선정되게 된 과정이나 왜 해당 위치의 숲에 해당 이름을 붙일 기획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 등을 좀 더 상세히 실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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