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매헌서포터즈_김성민]윤봉길의사의 유년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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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따뜻했던 봄이 지나가고 날씨가 슬슬 더워져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5월에는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 등 공휴일이 많아 여유 있는 한 달을 보내고 계실 것 같은데요! 다들 아셨겠지만, 6월에는 국토방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충성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된 공휴일인 현충일이 있습니다. 이 현충일과 잘 어울릴만한 특별한 날이 6월에 더 있는걸 알고 계시나요? 바로 매헌 윤봉길 의사의 탄신일입니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고려시대 명장이었던 윤관의 후손인 윤봉길의사는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18년 학교에 입학했으나 일제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교육을 하는 학교에 다는 것이 불만이던 차에 다음 해 3.1운동이 터지자 자퇴를 선택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어려서부터 지기 싫어하는 강한 성격 탓에 싸움을 많이 해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가지 싸움 일화에 대해, 소개해드리자면 윤봉길 의사가 일제학교에 다닐 때 일본인 교사가 일본어로 ‘나는 일본인입니다’ 라는 문장을 학생들에게 시켰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따라 하지 않던 중 윤봉길 의사의 짝궁이 문장을 따라하려 하자, 윤봉길 의사가 방과 후 짝궁을 끌고 나가 싸운 일화가 있습니다. 이렇듯 윤봉길 의사는 어린 시절부터 자주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가 될 수 있던 이런 강한 승부욕은 곧 학문으로 옮겨가 지기 싫은 만큼 공부에 몰입했다고 합니다. 특히 서양학문을 공부하며 깨어있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1921년에는 유학자인 매곡 성주록의 서당 오치서숙에 들어가 그의 문하생이 되었습니다. 사서삼경 등의 중국 고전들도 두루 익혀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1926년에는 스승으로 부터 사육신 성삼문의 아호인 매죽헌에서 따온 매헌이라는 아호를 얻었습니다. 이는 한겨울의 혹한에서도 지지 않는 매화, 즉 성삼문의 애국충절 정신을 닮길 바란 스승의 뜻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문하생이던 이 시기에 시집 명추, 옥타, 임추, 순운대편 등을 쓰셨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영특한 두뇌를 가진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자면, 윤봉길 의사가 아무래도 장남인 만큼 동생들을 가르치고 생활하며 굉장히 엄하게 대했다고 알려지는데, 윤봉길 의사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나자, 윤봉길 의사의 동생은 엄하게 대하던 큰 형이 없어져 어린 마음에 해방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저도 형제인 만큼 이런 얘기들을 들어보면 윤봉길 의사의 가족들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데, 후에 출가했던 자식이나 아버지의 순국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적일지 생각해보면 씁쓸해질 따름입니다.
오늘 윤봉길 의사의 유년시절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는데요! 흥미가 생겨 유년시절 뿐만 아니라 윤봉길의사의 생애와 독립운동에 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양재 시민의 숲역에 있는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 가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출처] 매헌 서포터즈 <윤봉길의사의 유년시절>|작성자 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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