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매헌서포터즈_한수연]04월 29일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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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9일을 알리다.
안녕하세요. 매헌 서포터즈 2기 기자단입니다. 어느새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4월에는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시나요? 날이 좋은 04월에는 봄 축제도 벚꽃 구경도 좋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름을 소개해 주고자 합니다.
1932년 0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였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당시 한국을 침략 중이던 일본 제국주의에게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일왕의 탄생 축하 기미가요가 흘러나올 때, 윤봉길 의사가 던진 물통 모양 폭탄에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일본거류민 행정위원장 가와바타 사다쓰구가 사망하고, 그 밖의 핵심 지휘관들에게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압을 당하면서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는 말로 우리나라의 독립심을 깨우고, 전 세계에 독립의지를 알렸습니다.
이후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12월 19일 총살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상하의 의거를 행하기까지
윤봉길 의사는 독립운동가이지만 훌륭한 문학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쓴 여러 글 중 ‘장부출가생불환: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글을 남긴 후 집을 떠나 김구와 뜻을 함께했습니다. 한인애국단에 입단 후 “이봉창 의사와 같은 일로 써달라”라고 하며 상하이 의거를 계획하였습니다. 당시 상하이 훙커우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과 점령 전승 기념행사에서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도시락을 지참하라고 했는데, 이 점을 이용해 폭발물 전문가 ‘김홍일’이 ‘도시락’ 모양과 ‘물통’ 모양의 폭탄을 제작하였습니다. ‘물통’은 투척용, ‘도시락’은 심문을 받지 않기 위한 자결용이었다고 합니다. 04월 29일, 윤봉길과 김구의 마지막 만남에서 회중시계를 맞바꾸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윤봉길은 자신의 시계가 김구의 것보다 더 비싸다며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은 자신에겐 쓸모가 없다고, 뒷일을 부탁한다고 하며 맞바꾸었습니다. 그 후 윤봉길은 거사를 위해 김구의 시계를 차고 훙커우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상하의 의거는 전 세계에 한국의 독립의지를 보였습니다
이 이후 중국의 장제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중국 영토에서 독립운동을 하는데 여러 지원을 해주게 됩니다. 또한 전 세계에 뉴스로 보도되면서 한국의 독립의지를 내보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국심을 일깨우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전엔 평범한 사람이었을 독립운동가들의 투철한 독립정신과 용기는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독립 유공자들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지,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준 나라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바쁜 삶을 살다 보면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해준 숭고한 희생들을 맘속에 두기 어려운데, 이러한 글들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자주 읽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도 가슴 한 켠에 우리나라의 영웅을 깊이 새기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4월은 윤봉길 의사의 애국심과 독립정신을 생각해보는 시간 또한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을 방문해 여러 자료들을 읽어보고, 매헌시민의 숲 산책을 하는 것도 의미있는 4월을 채우는 한 페이지가 될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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